문득 생각났다. 난 뭔가를 표현하고 싶은데, 동시에 외면하고 싶었다. 뭔가를 치열하게 글로 표현하기에는 내가 에너지가 없기도 했고, 때로는 게을렀다. 누군가가 읽고 평가할까 두렵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가장 냉혹한 평가자는 나 자신이다. 사실 이 블로그는 하루에 몇 명 들어오지도 않는다.
내 직업상, 예술적인 면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난 항상 말했던 것 같다. 작게라도 뭔가 표현하는 삶을 살라고. 그렇지 않으면 그 에너지가 고이고 고여서 치석이나 담석처럼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으로 굳어진 채 나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 충고를 가장 지키지 않은 사람은 나였다. 사실 그 충고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뭔가 꿈틀대는 무엇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치열하게 언어로 결정화시키는 작업을 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생각보다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무슨 놈의 영화를 보겠다고. 내가 그리 대단한 작업을 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곳은 그냥 내 테라스 같은 곳이다. 누군가 들여다봐주고 소통을 한다면 반갑게 손을 흔들겠지만, 보통은 그들이 그냥 지나갈 것이다. 나는 (가져본 적은 없지만) 테라스라는 공간에 나의 작은 식물들과 티테이블, 딱딱하고 칼라풀한 의자를 놓고 취향껏 꾸밀 것이다. 그냥 그렇게 즐기고 말 일이다.
어렸을 때 나는 학구열 높고 경쟁적인 동네에서, 그리고 엄청난 학구열을 가진 엄마 밑에서 성취중심적으로 성장했다. 사실 지금 서른을 넘긴 지 한참 되었지만 나 스스로 심리적 독립을 이뤄냈다고 자평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만큼 나도 그 가치관 안에서 허우적대며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자랐다. 나는 우연히도 어렸을 적 글을 좀 잘 쓴다는 피드백을 몇 번 받게 되었고, 엄마는 날 글짓기 학원에 보냈다. 처음엔 좋았다. 원고지에 뭘 쓰는 것이 신이 났다. 내 글이 반복적으로 평가 대상이 되고, 매주 백일장을 나가게 되면서 나는 글쓰기가 점점 피곤해졌다. 글은 내가 뭔가를 표현하는 수단이 아닌, 누군가의 구미에 맞춰 상을 받아와서 칭찬을 받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더 이상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당한 표현법, '어른들'이 좋아하는 가치관을 그냥 적절히 비벼내 적어냈고, 적당히 상을 받아도 딱히 기쁘다기보다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휴, 내가 상을 받아서 어른들이 좋아하겠다. 다행이다.
어느날 글짓기 학원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더 이상 왜 글이 늘지 않지?" 나는 글이 는다는 게 뭔지,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 당시엔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당시 난 글을 쓰려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냥 굉장히 재미없는 정답 맞히기 놀이를 굉장히 성의 없게 했을 뿐이었다.
대입에 매진하면서부터 더이상 백일장 참석을 요구하는 어른들이 없어졌고, 나도 자연스럽게 글을 쓰지 않게 되었다. 동시에 다른 사람이 치열하게 쓴 글들도 왠지 읽기 싫었다. 당시에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보다는 훨씬 복잡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최근에 재미있어 보이는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무엇인가가 내 가슴에서 불끈 일어서며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나도 그냥 표현하고 싶어. 뭔가를 언어화하고 싶어. 내가 쓰는 글의 끝이 어떤 모양을 갖추고 완성될지, 어떤 평가를 받을지는 상관하지 않고 그냥 뭔가를 써보고 싶어.
그래서 대애충 버려놨던 블로그를 다시 들어와 봤다. 내 취향대로 그냥 이것저것 한번 표현도 해보고, 꾸며도 보고, 바꿔도 보련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