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1. 독일로 가겠습니다
내가 20대 중반 이후 쭉 몸담았던 회사에는 '안식월'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정규직 3년을 근무하면 1달 유급 휴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워낙 이직률도 높고 근무 강도가 강한 업계라 이 제도가 큰 근속 동기가 되었다. (지금은 경기 침체로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9월 말 출발하는 안식월 품의를 얻어낸 나는 목적지를 '독일'로 정했다.
그 결과, 여자 혼자? 왜? 하필 독일? 프랑스도 아니고, 이탈리아도 아니고, 왜?? 라는 무수한 질문을 받았다.
독일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웃지 말자)
- 일단 남의 돈으로 한 달 쉴수 있는 기회는 다시 없다. 먼곳으로 간다. 유럽이 좋겠다. 그럼 유럽 어딜 갈까.
- 대작 만화 <몬스터>의 배경 독일이 좋았다.
- 어쩌다 맘에 들었던 유럽 문학, 영화들 중에 독일/오스트리아 작품들이 있었다.
- 10월에는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 난 맥주가 좋다. 맛은 잘 모르지만 와인도 좋다.
- 난 대도시에 큰 관심이 없고, 자연과 어우러진 곳에서 걷고 쉬는 것을 좋아한다. 독일은 소도시가 잘 되어있다.
- 유럽 최초의 도자기를 만들어낸 '마이센'이 있다. (필자가 취미 겸 도자기를 배우는 중이었다. 지금은 판매도 한다.)
- 저렴한 유스호스텔이 잘 갖춰쳐있다.
- 혼자 육로로 여행하면서 나 꾸미는 데는 관심 없다. 독일은 실용적이고 남 신경 잘 안쓰는 나라라고 하니 편하게 다닐 수 있겠다.
마음에 걸리는 건 하나였다.
- 음식이 맛이 없다며
필자의 도예 다음 가는 취미는 요리다. 여행지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음식이다. 필자는 쇼핑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영국 사람들이 유일하게 무시하는 음식이 독일 음식이라는 소문이.... -_-
그러나 9개의 장점과 1개의 단점을 비교했을 때, 1개 단점은 감수하기로 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랬다. 미각 따위 맥주 많이 마시면 무뎌질 것이다.
그럼 독일에서 어딜 갈까.
서점에 가보니 유독 독일 책은 적은 편이다. 프랑스, 뉴욕, 스페인, 체코 등은 수많은 감성 돋는 사진 에세이가 많이 출판되어 있다. 읽다보면 내가 그 길가에서 카푸치노를 마시고 있는 기분이 들고, 금방이라도 표를 끊고 싶은 그런 책들 말이다. 하지만 독일 다녀와서 감성 돋게 나온 책들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있는 가이드북을 사거나 선물받아서 탐독하며 루트를 짰다.
생각보다 독일은 상당히 넓었다. 대학시절 친구들이 유럽여행을 하며 한 국가에 2-3일씩 잡고 호핑 투어 했다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그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가고싶은 곳은 무척 많았다. 하지만 효율적인 루트를 짜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가 있었으니...
옥.토.버.페.스.트
어쨌든 그 기간에 뮌헨을 찍으려니까 동선이 참으로 기괴해졌다. 게다 그 기간 뮌헨의 숙박비는 2~4배가 겅충 뛴다. (한인 민박 3인실을 알아보니 3일을 기본 묵어야 하며, 방 하나에 총 120만원을 달랬다... -_-) 12인실 유스호스텔이 하룻밤 8만원 정도를 요구했다. 결국 뮌헨은 옥토버페스트 마지막 날에 맛배기나 보기로 마음을 고쳐먹고 동선을 짰다.
그래도 행복했다. 이런 것이 행복한 고민이구나아아아아.
일찍이 루프트한자로 직항 티켓을 할인받아 사놓고, 루트를 대강 정해놓고, 로만틱가도 관광 버스를 예약하고, 베를린 공연 티켓을 예매해둔 다음......
미친듯이 일했다....전날까지 야근으로 불사르고, 막상 짐은 그날 새벽을 꼬박 새서 쌌다.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이 뿜어져 나오더라.
20키로 배낭을 가뿐히 들던 예전 내몸이 아님을 직감하고, 어무니 트렁크를 빌려 옷과 책과 약을 쑤셔넣었다. (소도시와 자연과 유스호스텔을 사랑한 나는 트렁크가 얼마나 큰 짐이 되는 지를 도착해서야 알았다.....)
때는 가을이었으므로 한국 가을 날씨 생각하며 산뜻한 야상 하나에 청바지 하나, 티셔츠 둘, 추리닝 하나와 잠옷 속옷 정도 챙겨갔다. (그리고 엉엉 울며 현지에서 사이즈가 두배나 큰 플리스를 사 입는다.)
이제 나머지는 독일에 가면 어떻게 되겠지. 동료들이 챙겨준 정리 파우치로 말끔하게 짐을 분류해놓고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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